
2015년 개봉한 영화 ‘스물’은 청춘의 한복판에서 방황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온, 또는 지나고 있는 ‘스무 살’이라는 시간을 코믹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있는 연출,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 세 배우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어우러져 큰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스물’의 줄거리,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 의미, 그리고 영화가 전하는 청춘의 진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
스무 살, 인생이 처음 낯설어지는 순간
영화 ‘스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질하지만 인기 있는 ‘치호’(김우빈), 책임감 있고 성실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경재’(강하늘), 그리고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 지망생 ‘동우’(이준호). 이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점은 모두 인생의 첫 어른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호는 부모님의 돈으로 별다른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지만,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을 감춘다. 경재는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책임감을 강조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혼란스럽다. 동우는 만화가를 꿈꾸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애, 우정, 가족 문제, 사회 진입의 두려움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스무 살’이란 시기가 마냥 설레는 것만은 아님을 말한다. 특히 인물 간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솔직해서 공감대를 높인다. 친구 사이의 농담 같은 말속에 청춘의 외로움과 진심이 스며 있고, 웃음 뒤에는 각자 처한 현실의 무게가 존재한다. 이 영화는 인생의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청춘이 어떻게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며, 스무 살이라는 나이의 진짜 의미를 조명한다.
시대적 공기와 청춘의 상징성
‘스물’이 담고 있는 배경은 201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 취업난, 비정규직, 가족 책임, 경쟁 중심의 사회 등 다양한 이슈들이 인물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설명하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선택과 말 속에 시대의 공기가 담겨 있어 관객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치호는 사회적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대표적인 ‘헬조선’ 시대의 방황하는 청춘으로 그려진다. 겉으로는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지만, 실상은 어떤 가치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경재는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지만,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동우는 예술가로서의 자아실현보다 가족 생계를 우선시해야 하는, 이 시대 많은 청년들의 모습이다. 세 캐릭터는 단지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청춘이 겪는 다양한 고민을 대변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실패하거나 흔들리더라도 그것이 ‘정상적인 청춘의 모습’ 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스물’은 특정 인물의 성장 서사에 그치지 않고, 한 세대 전체의 불안정함과 가능성을 담아낸다. 또한, 영화는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감과 청춘의 조급함을 잘 표현한다.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는 나이, 하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스물’의 큰 매력이다. 사회적 조건이 다르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이 혼란의 시기를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위트 있게 비추고 있다.
웃기지만 슬픈, 그게 청춘이다
영화 ‘스물’의 가장 큰 매력은 ‘청춘’을 찬란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설프고, 때로는 한심해 보일 정도로 실패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이 진정한 ‘청춘의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즉, 실수하고 망설이며 엉뚱한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배우들의 열연도 이 메시지를 더욱 빛나게 한다. 김우빈은 허세 가득한 치호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강하늘은 현실에 충실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경재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준호는 부담스러운 가족 책임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우의 감정을 진심 어린 눈빛으로 전달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연출 역시 감정의 진폭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빠르게 전개되는 장면 사이사이에 불쑥 찾아오는 진지한 순간들이 영화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더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과 장면 전환은 청춘의 들뜬 감정과 갑작스러운 고요함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덕분에 관객은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나도 저랬었지’ 혹은 ‘지금 내 모습 같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스물’은 단순한 청춘 영화 그 이상이다. 현실적인 대사와 설정, 개성 강한 캐릭터, 유쾌하지만 짠한 이야기 전개가 어우러져 오래도록 회자되는 작품이 됐다. 청춘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향수를, 청춘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영화. 그래서 ‘스물’은 시간과 관계없이 꾸준히 회자되는 한국형 청춘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